바이오 특허는 레시피입니다 – PCSK9 타겟 항체 사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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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성엽 변리사

콜레스테롤을 잡는 새로운 무기, 그리고 10년의 특허 전쟁.

“나쁜 콜레스테롤(LDL)”을 낮추는 약은 많지만, 스타틴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등장한 것이 PCSK9 억제제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 몸에는 콜레스테롤을 청소하는 “청소부(LDL 수용체)”가 있는데, PCSK9이라는 단백질이 이 청소부를 분해시킵니다. PCSK9 억제제는 이 파괴자를 막아서, 청소부가 제 일을 하게 해주는 약입니다.

암젠(Amgen)의 레파타와 사노피·리제너론(Sanofi·Regeneron)의 프랄런트가 이 시장의 양대 산맥입니다. 그런데 2014년, 암젠이 “PCSK9에 결합하는 항체는 다 우리 특허”라며 사노피·리제너론을 고소했습니다. 연 매출 1조 원이 넘는 시장을 두고, 10년간의 법정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2023년 미국 대법원의 최종 판결—암젠 패소. 이 판결이 바이오 특허의 판도를 바꿨다고들 하지만, 사실 법원이 한 말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바이오 특허는 레시피다.”


배경

PCSK9 억제제란?

PCSK9(Proprotein Convertase Subtilisin/Kexin Type 9)은 간세포에서 LDL 수용체를 분해시키는 단백질입니다. LDL 수용체는 혈중 LDL 콜레스테롤(“나쁜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데, PCSK9이 이 수용체를 파괴하면 콜레스테롤 제거 능력이 떨어집니다. PCSK9 억제제는 이 단백질에 결합하여 LDL 수용체가 파괴되지 않도록 보호함으로써, 체내 콜레스테롤 제거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합니다. 스타틴으로 충분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나 심혈관 질환 고위험군에게 처방되며, 심장마비, 뇌졸중, 불안정 협심증 예방에 사용됩니다.

이 분야에서 암젠(Amgen)은 레파타(Repatha, 성분명: 에볼로쿠맙)를, 사노피(Sanofi)와 리제너론(Regeneron)은 공동으로 프랄런트(Praluent, 성분명: 알리로쿠맙)를 개발하여 시판하고 있습니다. 2022년 기준 레파타의 전세계 매출은 약 13억 달러에 달하는 대형 시장입니다.

특허소송의 시작

암젠과 사노피/리제너론은 각각 2011년에 PCSK9에 결합하는 항체에 대해 특허를 받았습니다. 2014년 암젠은 PCSK9 단백질에 결합하는 항체에 대한 두 건의 추가 특허(US 8,829,165US 8,859,741)를 등록한 후, 사노피와 리제너론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사노피와 리제너론은 암젠 특허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본격적인 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바이오 특허는 레시피다.”

비유하자면 특허권자 암젠은 자신의 특허를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비빔밥이라는 ‘기능’을 정의했으니,
김치·참치·곱창 비빔밥 포함 비빔밥 전체가 제 특허입니다.”

즉, “PCSK9을 억제하는 기능을 가진 항체”라고 정의해 놓고,
그 기능을 만족하는 수많은 항체들 전체를 독점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법원은 반문했습니다.

“그 많은 비빔밥을, 실제로 모두 만들어보신 기록이 있나요?”

이 질문 하나로 상황이 모두 정리되었습니다. 암젠이 특허 명세서에서 실제로 실험하고 데이터로 남긴 항체는 26개에 불과했고, 암젠이 제시한 두 가지 방법(로드맵, 보존적 치환)은 추후 연구과제로 암시만 되었다고 판단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만들어본(데이터가 있는) 항체만 인정되며, 나머지는 실험한 적이 없으니 전체 독점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전체 타겟에 대한 청구범위는 무효처리)

결과적으로 법원은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만들어본(데이터가 있는) 김치·참치 비빔밥만 인정됩니다.
나머지는 실험한 적이 없으니 전체 독점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기능으로 정의된 수없이 다양한 항체 전체를 독점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실시가능 기재가 있어야 하는데, 암젠은 이를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 원칙은 원래부터 존재했습니다

“기능적 언어”로 넓게 청구할수록, 그 넓이를 데이터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원칙은 미국, 한국, 일본, 유럽 모두에서 일관되게 적용되어 왔습니다.

미국

202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Amgen Inc. v. Sanofi 사건에서, “더 넓게 청구할수록, 그 전체 범위가 재현 가능하도록 충분한 안내(Enablement)가 필요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는 항체 사건을 계기로 재확인된 것일 뿐, 미국 특허법(35 U.S.C. §112)의 오랜 원칙을 그대로 적용한 것입니다.

한국

한국에서도 화학·바이오 특허에 대해 “기능만 적어놓고 실제 구현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으면 특허가 무효”라는 판례가 매우 일찍부터 확립되어 있습니다.

대법원 2001. 11. 30. 선고 2001후65 판결(의약 용도발명)

화학발명의 경우 예측가능성 내지 실현가능성이 현저히 부족하여, 실험데이터가 제시된 실험예가 기재되지 않으면 당업자가 그 발명의 효과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용이하게 재현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특히 의약의 용도발명에 있어서는 약리효과를 나타내는 약리기전이 명확히 밝혀진 경우가 아닌 이상, 특정 물질에 그와 같은 약리효과가 있다는 것을 약리데이터 등이 나타난 시험예로 기재하거나 이에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기재하여야만 비로소 발명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https://casenote.kr/대법원/2001후65

대법원 2024. 10. 8. 선고 2021후10886 판결

청구항이 발명의 설명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는지 여부는 출원 당시의 기술 수준을 기준으로 하여 통상의 기술자의 입장에서 판단하여야 하고, 출원 시의 기술상식에 비추어 보더라도 발명의 설명에 개시된 내용을 청구범위에 기재된 발명의 범위까지 확장 내지 일반화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청구범위는 발명의 설명에 의하여 뒷받침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https://www.scourt.go.kr/portal/news/NewsViewAction.work?gubun=4&seqnum=5207

일본·유럽

일본 지적재산고등재판소(2023년 1월 26일, 사건번호 2021(行ケ)10093, PCSK9 항체 사건)

리제너론이 제기한 암젠 특허(JP5705288) 무효 소송에서, 법원은 경쟁 결합 항체의 중화 기능 및 작용 메커니즘을 뒷받침하는 기재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서포트 요건 위반으로 특허를 무효화했습니다. 명세서에 항체가 어떻게 PCSK9와 LDL 수용체의 결합을 중화시키는지에 대한 메커니즘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경쟁 항체가 중화 기능을 가진다는 것을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https://legalblogs.wolterskluwer.com/patent-blog/amgen-v-sanofi-and-regeneron-japan-ip-high-court-overrules-its-own-decision-on-validity-of-amgen-patent/

유럽 통합특허법원(UPC) 뮌헨 중앙부(2024년 7월 16일, 사건번호 UPC_CFI_1/2023)

사노피와 리제너론이 제기한 암젠 특허(EP 3 666 797) 취소 소송에서, UPC는 해당 특허가 진보성이 결여되어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UPC가 개원 이후 내린 최초의 취소 판결로서, 17개 UPC 회원국 전역에 효력이 미쳤습니다. 다만, 2024년 11월 UPC 항소법원은 이 결정을 뒤집고 암젠 특허가 유효하다고 판결하여 소송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https://www.unifiedpatentcourt.org/sites/default/files/upc_documents/2023-09-20-cd-munich-upc_cfi_1-2023-ord_550152-app_546231-2023_order-rejecting-2621b-application_anonymized.pdf

그래서 앞으로의 특허 전략이 “기능 → 구조·데이터 중심”으로 간다는 말은?

사실 ‘원래 그래왔다’는 뜻입니다. 언뜻 보면 “시대가 변해 전략이 달라졌다”고 들릴 수 있지만, 실무적으로는 반대입니다.

항체·화학·바이오 분야의 특허는 언제나 “구조·데이터” 중심이었고, 최근 일부 기업들이 너무 넓은 기능적 언어로 특허를 청구했던 관행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제자리를 찾은 것입니다.

즉, “PCSK9 억제 항체”처럼 기능으로만 광범위하게 주장하면 안 되고, 특정 구조, 변형체 라이브러리, 에피토프, CDR 패턴, 약리데이터 등 구조·기능·작용기전 모두를 실험데이터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 늘 존재해왔던 정석적인 특허 전략입니다.

이 사건이 기업에 주는 실질적 메시지

넓은 특허를 확보하려면, 일반화할 수 있는 다수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특허를 넓게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넓이를 명세서에서 실험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능적 청구항은 여전히 유효하게 사용될 수 있지만, 해당 기능이 적용되는 전체 영역이 실험 및 합리적 예측 가능성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기능적 클레임은 금지된 것이 아니라, 데이터로 보완되어야 합니다.

한국·미국·일본·유럽 모두 같은 입장입니다. 기능적 언어 자체는 허용되지만, 그 기능이 적용되는 전체 영역이 실험·합리적 예측 가능성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생각보다 경쟁사의 회피 설계가 쉬울 수 있습니다.

“기능이 같으면 모두 특허”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특허 범위는 실험한 범위의 주변부로 수렴합니다.

따라서 기업은 더 많은 항체 후보를 조기에 확보하고, 변형체 라이브러리를 만들어, 구조·기능 데이터 패키지를 특허 명세서에 넣는 전략을 R&D 초기 단계부터 병행하셔야 합니다.

결론

암젠–사노피 사건은 새 원칙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래된 특허법의 기본 원칙을 다시 확인한 사건입니다.

바이오 특허는 레시피입니다. 그리고 그 레시피는 ‘실제로 여러 요리를 만들어본 데이터’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기능적 언어로 넓게 청구하는 특허가 금지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특허는 충분한 데이터로 뒷받침되어야만 유효합니다. 앞으로는, 아니 원래부터 그랬듯이, 구조·데이터 기반의 충실한 명세서가 특허 독점력의 핵심이 됩니다.